희망을 찾은 사람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여호수아의 죽음부터 사울 왕의 즉위까지의 시대이다.

사사 시대에는 범죄 - 징계 - 회개 - 구원이 반복되는 시대였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17:6;18:1; 19:1)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도 바로 그것을 지적한다. (21:25)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 시대를 왕이 없었다는 말은 한마디로 희망이 없는 세상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

유다 베들레헴 땅에 찾아온 흉년은 희망이 없는 세상을 더 끔찍하게 만들었다.

한 가정 4식구가 희망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어디론가...

희망을 찾아 모압 땅을 찾아온 한 가족 4. 무슨 희망이 있기에 찾아왔을까요?

살기위해 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죄인가요?

 

성경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린 재앙을 크게 3가지로서 (흉년(기근). 전쟁. 전염병)

성경에 보면 흉년(기근)이 종종 있었다. 흉년(기근)으로 인한 사건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 애굽 땅에 들어가 부인 빼앗긴 이러저런 사건.

요셉= 애굽 땅에 종 생활 할 때 바로의 꿈. 온 세상의 풍년과 흉년의 사건.

이스라엘(야곱)식구가 흉년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애굽 땅에 와서 살았다.

 

현대판 흉년 속에 사는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어디론가 갑니다.

북한 사람들= 중국에 혹은 중국을 통해 세상 곳곳에.. 희망을 찾아 한국에 많이 정착을 합니다.

멕시코 사람들= 살기 위해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많이 옵니다.

흉년을 맞이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 세계 여러나라에 찾아가고 있다.

 

모압 족속 시작이 롯과 두 딸로 인하여 시작된 나라입니다. 모압(큰딸) 암몬(작은 딸)

이스라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는 족속들입니다.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 모압 땅에 무슨 희망의 소식을 듣고 찾아 갔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백성들이 사는 곳에 무슨 희망이 있길래 갔을까요?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희망은 무엇일까요?

그 희망을 찾아 언제 어디로 누구와 함께 찾아 살아가나요?

 

유다 베들레헴의 한 가족이 모압 땅에 찾아온 희망은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나게 살기 위한 특별한 희망이 아닙니다.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적인 일입니다. 먹고 사는 일.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셨다.

먹는 것이 희망인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 1/3이상.

4명 한가족의 희망은 본능적인 것. 먹고 사는 일. 이 가족에게는 희망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

큰 비젼등 목표로 하고 큰 희망을 가지고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다.

흉년으로 굶어죽지 않으려고 모압 땅에 찾아온 것이 희망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까지의 거리는 약 50키로미터정도입니다. 2절에 누구인가 말한다.

물론 이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이름으로 그 사람의 특성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간략히 살펴볼 필요는 있다.

아버지 엘리멜렉=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 어머니 나오미= ‘기쁨’ ‘즐거움

두 아들 말론= ‘보석’ ‘장식’/ ‘병약함, 아픔/ 기룐= ‘끝남’ ‘허무’ ‘죽음을 의미한다.

 

아버지 엘리멜렉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가족의 희망에 하나님은 빠졌습니다. 하나님빠진 곳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모압에 들어가 살더니 어느 날 엘리멜렉이 죽고. 희망을 찾아온 보람이 없어졌다.

나오미는 남편이 죽자 새 희망을 찾기 위해서 두 아들을 결혼시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

결혼의 의미는 남편은 죽었지만 자식들과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려는 방법입니다.


희망을 찾아 모압 땅에 산지도 10. 결혼한 두 아들이 죽었다.

집안에 3여자만 남았다. 3여자만 남았다. 다른 가족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희망을 찾아 모압땅에 온지 10여년만에 한 가족의 달라진 모습. 변화.

아버지,어머니 두아들이었는데 // 어머니와 두 며느리 3여인만 남았다.

희망을 찾아온 남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희망을 찾아온 여인 한명만 남은 셈입니다.

두 여인은 모압땅의 사람이다. (어릴적 기억 동네에 남자만 5명이 죽고 어머니와 2딸만 살다)

희망을 찾아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해 보았으나 결과는 희망대신 절망뿐입니다.

 

어머니 나오미도 남편 죽자 새희망을 찾아 아들 결혼과 함께 모압 땅에 완전 정착모습.

새희망을 찾아 살아가려는 나오미의 삶에도 하나님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빠진 곳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 혹시 하나님빠져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없는 나의 삶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분명히 말합니다. 절망뿐입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 땅의 기근을 피하여서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을 치셨으나 나오미는 언약의 땅으로 돌아오는 대신에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혼인하게 하였다. 모압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두 아들도 치시자 나오미는 가난하고 비게 되었다. 세 남자가 죽고 세 과부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진노 중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셨고, 그 소식이 모압에 있는 나오미에게도 들렸다. 나오미는 이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돌이켜서 언약의 땅으로 왔다.

룻과 오르바도 나오미를 따라나섰지만 오르바의 말을 듣고서 나뉘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던 오르바는 돌아가고 룻은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언약의 땅으로 따라왔다 

      

인간의 본능적 본질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의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본능적 본질을 넘어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육신의 삶에 흉년이 왔다. 나에게만 온 것 아니었다.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왔다.

인간의 본능적 본질 인간의 욕망을 따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정든 고국.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왔다. 세희망의 삶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절망과 죽음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오미는 삶을 돌아본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라도 제 정신이 듭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엘리멜렉 가정이 모압 땅에서 계획한대로 모든 일이 다 잘되었다면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 찬양과 감사. 고국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

무엇을 향한 삶을 살아가려고 또 계획할까요?

 

어쩌면 롯처럼 소돔과 고모라 성 가까이 살다가 점점 성안으로 들어가 성의 유지로 살아가는 롯.

범죄의 소굴에서 살면서 괴로워하면서 그 곳을 떠나려고는 하지 않았던 롯.

=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맛을 쉽게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쉬운 삶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세를 향하여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4-26)

 

이제라도 나 혼자 남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국을 떠나올 때 가족이 있었다. 많은 재산도 있었다. 그래도 제법 살만했다.

그러나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가족도 없다. 재산도 없다.

인생은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 같지만 어느 지점에 가면 나홀로 서야한다. 나홀로 가야한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누가 나와 함께 해 줄 수 있는가요? 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두 며느리를 부모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나오미는 며느리를 달래서 부모 집으로 하나는 돌아갔는데 하나는 돌아가지 않고 함께 왔다.

육신적으로 보면 부모 집에 돌려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이다.

영적으로 보면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젊은 여인의 인생을 어쩌려고 함께 해야 하는가?

함께 돌아오는 일은 나오미의 욕심인가요? ? 이방 땅에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고국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함으로 구원받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나오미가 어떤 신앙의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흉년이라고 고국을 쉽게

떠나는 것이다. 육신의 삶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인 것이다.

 

엘리멜렉 가정이 희망을 찾아 모압 땅에 왔으나 맘먹은 대로 희망을 가지고 살지 못했다.

세상 삶은 사람들이 맘먹은 대로 살아가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압 땅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나오미 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두 며느리를 부모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입니다.

아직 젊은 두 며느리에게 부모 집으로 돌아가 새희망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 홀로 남았으니 나는 내 고국으로 돌아가렸다.


처음에는 두 며느리가 아니라고 함께 따라가겠다고 한다.

나오미가 하는 말 나를 따라와봐야 아무런 희망이 없다. 절대로 나를 따라오면 안된다.

강력하게 말을 하니 며느리오르바는 울면서 부모 집으로 돌아갑니다.

룻이라는 며느리는 가지 않겠노라고 강력하게 거부를 합니다. 달래보고 강압하고.

룻아 내가 섬기는 하나님도 나를 버리고 나에게 벌을 주어 내 가정이 죽음의 가정이 되었다.

하나님도 나를 버린 상황인데 너 나를 따라오면 큰일난다. 나오미 말이 진실이자니요.

나오미는 그냥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따라와봐야 아무 희망이 없음을 강조하고 강조해도

룻이라는 이방여인의 마음은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요동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오미 씨어머니 따라가면 모압에서 보다 더 잘살 수 있는 뭐가 있어서 그런가요?

룻은 나오미 따라가봐야 고생 엄청합니다. 아무런 희망이 정말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룻은 나오미를 따라가겠다는 것입니까?

룻은 이방여인. 나오미 가정에 시집와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가정에 시집와서 좋은 꼴 보지 못했습니다.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

고난. 고통. 불행. 저주. 죽음. 등만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룻은 나오미를 따라 갈 뿐 아니라 그의 고백에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룻은 육신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어머니와 다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죽는 일 외에 죽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룻.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비록 이방사람이지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난다면 하나님의 저주의 저주를 받겠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이 찾아 떠난 희망은 육신의 양식입니다. 육신의 희망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속한 것을 희망으로 알고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신의 속한 것들을 희망으로 알고 찾는 사람들 중에 얼마나 찾습니까?

희망을 찾는 사람보다 못 찾는 사람이 더 많지요

세상의 모든 희망을 다 찾아 누렸던 솔로몬 왕의 고백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말을 하면 사람들 왈 그렇게 말할지라도 누려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헛되다는데 왜 그 말을 못믿고/ 헛되다는데 왜 구지 체험하려고 하는지/

헛되다는데 왜 다른 사람은 아니어도 나는 해 봐야겠다고 하는지/

 

수혈하는 것

1667년 죽어가는 사람에게 동물의 피를 수혈하려했다. 동물 중 어느 동물이 좋을까? 양을 선택.

피는 심장에서 나오고 심장에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상상해서 선한 동물 중에 양을 선택했다고 한다.

짐승의 피를 수혈받은 사람은 다 죽었다. 1818년 짐승이 아닌 사람의 피 수혈을 시도한다.

런던 가이스병원에서. 이 경우 어떤 환자는 살고 어떤 환자는 죽고.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는 사실에 주목한 란트슈타이너. 끈질긴 탐색과 연구 끝에 1900년 피에는 4가지 혈액형이 있다.

이 때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연결했다. 1차대전때 갑자기 많은 피가 필요 응고된 피 1917년에.

250년간 연구 끝에 나온 결과이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의사들이 연구한 것을 사용하지요. 아니야 내가 다시 연구해야해

그래서 그 의사가 다시 연구해서 사용하려 한다면 그 의사는 어떤 의사입니까?

사람들이 그래 대단하다. 자존심이 있구나. 지조가 있구나. 훌륭해. 그 의사가 연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받고. 진료받자.. 그래요. 여러분 그럴래요.

 

성경에 앞서간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아야하는데 아니라고 한다.

내가 직접해 보아야겠다는 사람이 많다. 여러분도 그 중에 한사람입니까? 알아서 하셔야지요.

 

룻이라는 여인은 나오미의 가정에 와서 비록 남편이 죽어서 육신적인 행복은 없었지만

영적인 새희망을 찾은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을 새희망으로 찾는 사람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1/3-4

 

새희망을 찾은 룻은 자기 고국을 두고. 부모형제도 두고. 나의 모든 것을 두고.

낯선 타국의 나라에 이방인으로 멸시천대받을 것을 감안하고 고난, 고통. 살길이 막막하지만

내가 찾은 새희망과 이것들과 바꿀 수 없어서 죽기 살기로 나오미를 따라 온 것입니다.

룻이 찾은 새희망이 진짜 희망입니다.

진정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야 할 희망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희망을 찾은 자일 것입니다.

아직 이 희망을 찾지 못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희망을 찾지 못하면 내 인생에 새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