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여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세 교회 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된
  교회이다(골로세서 4:16).
  소아시아 부루기아의 수도이며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16마일
  떨어진 지점의 교회로 지금의 터키 지역 곧 에배소 교회로부터
  일곱교회가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가장 아래 쪽에 위치한 교회다.
  골로새가 꼭지점으로 동쪽에 있고 서북쪽 방향으로 약 11 mile
  떨어진 곳에 히에라볼리, 서남쪽으로 약 11 mile 떨어진 곳에
  라오디게아가 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안티오쿠스(ANTIOCHUS) 2세가 그의 부인  LAODICE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라오디게아라 불렀다.




untitled.png


 ♣라오디게아 교회에 소개된 예수님
  계시록 3:14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3가지 이름으로 소개 되셨다.
▼“아멘이시오”라는 이름으로(the God whose name is Amen)
  모든 피조물로부터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뜻이며    (고전 14:16)
  모든 피조물로부터 소원과 간청을 들어 주실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에레미야 28:6)
  또한 모든 피조물로부터 화답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뜻이다. (신명기 27:15)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보이신 분이시라는
  뜻의 이름이다. (빌립보서 2;6-8)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14:36)
  라는 이 말씀이 약속해 놓으신 예언을 몸소 몸으로 이루심으로
  그리스는 구원자 이심을 증명해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해 보이는 증인이시라는 뜻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셨을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    하였느니라 하신 분이시며 (잠언8;27-30)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하는 창조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로마서11:36)

♣라오게디아 교회의 행위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니
  계시록 3;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오디게아의 물의 약점은 물이 미지근 하다는 것이다.
  11mile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공급 받아야만 했는데
  히에라볼리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처음에는 매우 뜨겁지만 수로를    통해 흐르는 동안 미지근해진다.
  차지도 덥지도 않는 것을 미지근 하다라고 하는데 분명하지 못한    상태, 어정쩡한 상태, 어중간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빛과
  어두움의 중간은 어두움이며 빛이 아닌 것이다.
  믿음의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에서도 선과 악으로 확실하게 나누어    지며 중간은 선이 아니라 악이며 믿음의 결국인 천국과 지옥에서
  미지근 하다의 결국은 지옥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게디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음에 두시고 요한을 통해 믿음의 행위가 차던지, 아니면
  더웁든지 어느 한쪽을 택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으며
  미지근한 물과 같은 행위로 안주해 있을 경우 너희를 토해
  버리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보신 라오디게아 교회 현상
  계시록 3: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교회,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호세아 12:8절에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땅을 분배 받을 때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12지파 반열에 들어갔지만 계시록 7장에
  14만 4천의 구원받은 12지파에서는 에브라임은 빠지게 되었고
  마가복음 10:17절 이하에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영생에 관하여 예수님께 물었을
  때에 예수님의 대답은 네 가진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였다(마태복음 19;17)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
  간 것이다.
  에브라임이 구원받은 14만 4천의 이스라엘의 12지파 반열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부자 청년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영생의 길을 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부자라고 자랑 하지만 영적 상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중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네 환난과 궁핍(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라고 칭찬하신 것은 극한 환난과 가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죄 사함 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의 상태, 부자의 영적 상태는
  바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이다.
♠눈먼 것과 벌거 벗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라세인들을 향하여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마태복음 15:14)
  고린도후서 5;3-5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
  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눈먼 것과 벌거 벗은 자라 한 것은
  영적으로 가장 불쌍한 자라는 뜻이다.
  영적인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이 다 영원한 구덩이에 빠지게    되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며 믿음의 결국은 예수님이
  죽은자들의 영혼과 함께 공중에 오실때(데살로니가전서 4:13-16)
  위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몸이 땅에서 일어난 썪어질 몸에
  덧입혀져(고린도전서 15:53) 부활의 몸으로 변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덥입혀지지 못한 벌거벗음은 영원한 부끄러움의 지옥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영적 세가지 처방은
♠“첫째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금을 연단하려고 할때는 채굴된 원광석을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그 용제에 섞어 용광로에 넣고 높은 열을 가해 녹이면 불순물들은    용제에 흡수되어 표면 위로 떠오르고 무거운 금은 바닥에
  가라앉게 되며 구리나 철, 아연 같은 불순물들이 제거되면
  순금을 얻을 수 있으니 그래서 예수님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라는 것이다.
  불로 연단된 금은 우리들 삶 속에 섞여 있는 이기심, 탐심, 자랑,     불신, 자존심 같은 불순물들이 걸러진 순수한 금이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불로 연단된 순수한 금만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흰 옷은 의의 옷이요, 성결의 옷이며 하늘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입고 갈 정결한 예복을 말한다.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었는데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을 때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흰옷)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태복음 22:8-13) 
  천국에서 땅의 악인들을 속히 심판해 달라는 순교자의 탄원에
  대답으로 흰옷을 주시며 기다리라고 하셨다(계시록 6:10-11)
  계시록 7장 9절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흰옷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구원자 예수님 앞에 설 때에 반듯이
  입어야 하는 옷이 흰옷이다. 벌거벗음을 흰옷으로 가리운 사람만이    장차 예수님 앞에 설수 있는 구원받은 사람임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셋째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고”
 “하늘에서의 전쟁”에서 패배해 지옥으로 쫓겨난 사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신음하는 부하들을 불러 모아 거대한
 악마의 궁전을 짓고 이 궁전 회의에서 그는 부하들을 설득해서
 반역의 무리는 다시 일어나 싸울 것을 다짐했다.
 반역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새롭게 창조 했을 때 사탄의 무리는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에덴 낙원을 자기 것으로 하기위해 사탄 자신이 낙원으로 잠입한다.
 1667년 존 밀턴이 실락원을 쓸 때 그는 소경이었는데 
 그런데 그가 쓴 에덴 낙원의 아름다운 묘사는 누가 이 소경 존
 밀턴을 따라 갈수 있겠는가 !
 예수님이 사라고 하신 안약은 무엇이며 어디서 사는 것일까?
 마가복음 10:46~52절에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에게
 “선생님이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니다” 안약장사 되신  예수님에게
 소경 바디메오는 안약 사기를 원했을 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면서 안약 팔기를 허락 하셨다.
 바디메오는 안약을 사서 바르니 자기 앞에 서신 선생님이 구원자
 이신 것을 보고 알게 되었고 길에서 바로 예수님을 쫓아가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신   안약은 선생님이 구원자로 보이게 하는 놀라운 효력을 발휘하는
 안약이였다.

▼마지막 처방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미지근하다라는 상태는 느린 걸음이다.
  목표 골인 지점을 향하여 죽자 살자 달려도 목표가 먼 곳에
  있는데 미지근한 느린 걸음은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미지근한 상태는 이땅에서 살기위한 세상과 타협이며 세상을 사랑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에 회개 해야할 큰 죄다.
  미지근한 상태에서는 회개의 기회가 열리지 않는다.
  이사야 9장 7절에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고후서 11:2절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주님 앞으로 중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사역에 목숨을 걸었다고 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

♣내가 문밖에서 두두리노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절)
  성화 중에 윌리암 홀맨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런던
  성당에 걸려있는데 대문 앞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손에
  등불을 들고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바깥에서 열수 있는 손잡이가 없기에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이며 그 문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마음의 문이다.
  주님이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즉각적인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을 말한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식탁을 같이하는 하나님 나라의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이며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심판주 주님이 문 앞에 와 계십니다.
  라오디게아의 뜻은 “백성을 심판 하심이다” 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선교의 문이 점점 닫혀지면서 세상을 향하여     부요해져 타협을 통하여 종교통합의 형태를 가추어 가는 교회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교회의 모형이다.
  하나님 말씀의 법과 신앙의 열정이 미지근해 지면서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인본주의 지향적인 말씀선포와 세속적인 복음으로    말씀과 진리에서 멀어져가는 교회가 라오디게아교 회와 같은 현대    교회의 모습이다.
  주님이 보신 현대교회를 향하여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셨고 곤고 한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 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회라고 지적 하셨다.
  이런 현대교회의 모습을 차지도 덥지도 않는 교회라고 책망하시고
  토해 버리겠다는 말씀으로 무서운 경고를 하신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이요 주님이 심판주 재림의 주님으로 오시는 시기에    현대 교회가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차지도 덥지도
  않는 뜨뜻미지근한 상태라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이며 때를    아는데 너무나 무감각 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태복음24;44-46)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태복음 24:42-43)
  오늘도 주님은 현대 교인들의 마음의 문밖에 오셔서 세상에
  취하여 잠을 자고 있는 성도들을 깨우기 위하여 문을 두두리고
  계십니다. 
 
  교회들이여!!!
  애타게 문을 두두리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교회들이여!!!
  재림의 주님이 지금 우리들의 문 앞에 와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