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초대 12단계

본문 말씀 :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 감이라.

1 단계 : 나는 무엇일까요?

나는 보이는 부분과 안보이는 부분으로 나누져 있음을 압니다.

보이는 부분은 육이요 안보이는 부분은 영혼입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부분으로서 양심과 직관과 영교로 이루어 지며 또한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서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은 눈에 보이는 모양이요 형체를 말하고 시간의 한계 속에서 언젠가는 소모되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 “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체라는 집속에 들어있는 생각 감정 의지를 가지고 있는 “나” 영혼을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은 두가지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육이라는 보이는 형체 (earthly body)와 “나’라는 보이지 않은 영혼의 형체(spiritual body)가 있읍니다.

육의 형체는 유한한 것이요 영혼의 형체는 무한한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어떻게 왔을까요? 영혼의 명령에 따라 육체인 손과 발과 눈의 움직임을 따라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좌우하게 되며 진정한 “나”는 영혼이라는 보이지 않은 존재가 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 속에 유한과 무한의 존재가 육이 살아 있는 동안 함께 있게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구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

그리고 다시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종교도 그리고 자신이 신이라 주장했던 어떤 종파의 교주도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세상의 창조와 사람의 창조를 명확이 기록해 놓고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기록한 그데로 되고 있는 현실을 누가 부인 할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몸은 흙에서 왔기에 흙을 통해서 얻어진 영양소를 먹고 살면서 흙을 밟고 살다가 흙으로 된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 사람 모양의 흙의 형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의 생기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 부릅니다.

저는 오래전에 떠났던 옛집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녀 올수가 있습니다.

육으로 간다면 몇년에 가야할 시간을 눈 깜짝할 시간보다 더 빠르게 갔다 올수가 있다

는 것입니다.

육을 벗어난 영혼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생각의 속도로 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미리 알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바로 나는 이러한 존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육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육신 속에 들어 있으면서 밖을 내다보며 밖에서 보이는 물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구별해 내는 것이 “나”입니다.

우리는 세개의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있고 느낄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립자의 세계요

또 하나는 현실 세계요

또 하나는 우주의 세계로 4차원의 세계입니다.

미립자의 세계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원소라고 하는 DNA 라고 하는 미립자의 세계를

 부인 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마는 갈수 없는 몇10억 광년이 걸리는 우리의 인생의 시간으로는 갈수 없는

 거리의 은하계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미립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나의 육신의 세계요 몇억광년이 걸리는 거리를 갈 수 있는 세계는

바로 “나”라는 영혼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개의 세계를 가진 존재가 나라는 존재입니다.

형제님! 나라는 존재가 우주를 안고 있는 존재인 것을 조금은 짐작이 되시는지요

2 단계 나는 어디서 왔을까요?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왔습니다.

나는 나의 의지로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세상에 오지 않았읍니다.

나는 태어나 보니 장소는 일본 오사카였으며 정씨집에 5섯번째 자녀로 아들로 태어 났읍니다.

나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살았읍니다.

누가 나를 이곳에 이때에 태어나도록 계획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뱃속이 너무나 환경이 좋아서 오래오래 살려고 했는데 세월이 가다보니 어떤 힘에 떠밀려 세상에

 나오게 되었읍니다.

그냥 뱃속에서 언제까지 사는 줄 알았읍니다.

세상에 나온 것도 전혀 저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일 이였읍니다.

뱃속에 태어난 것도 밀려 세상에 나온 것도 전혀 전혀 나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이 일어나고 진행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 살 때에 밖앝 세상이 있을 줄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얼굴을 보이며 내가 자신들의 아들이라고 하며 나를 낳게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눈길을 보내 주었고 보살펴 주었고 길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 왔느냐고요? 어머니 뱃속에서 왔습니다.

형제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별나라에서 갑자기 이땅에 오셨는지요 아니면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 왔다는 말에 동의 하십니까?

아니면 모르겠다. 관심이 없다라고 하실 것입니까?

돼지같은 짐승들은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 그들에게는

영혼이 존재치 않기 때문입니다. .

3 단계 나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최희준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노래를

우리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이 어디서 와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어디로 가기 때문에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저도 벳속에서 살다가 밀려서 나와 세상에 살다보니 언젠가는 또 어디론가 가야 하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구도 부인 못하는 현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이제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어디론가 간다는 사실을

누구도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영원히 살아 보려고 신하들에게 불노초를 구하러 보낸 진시왕도 그의 신하들도 다 세상을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히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만약 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형제님!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죽어 없어지면 그만이지 가긴 또 어디로 가느냐고요 ?

지금 형제님의 몸속에 우주의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는데도 짐작이 안가십니까?

그래도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무관심으로 버티어 보시렵니까?

4 단계 세상 밖에 존재하신 하나님.

나그네의 삶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나그네라는 사실과 우리의 본향으로 가는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이 인생의 목적지로 알고 이땅에 무엇인가

남기고져 하여 최선을 다하고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공부하고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시급한 현실입니까?

아니면 이곳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그리고 어디론가 또 가야만 하는 이 현실속에 살면서 가야만 하는

 그곳을 면밀하게 찾고 알아보는 탐구도 보다 급한 현실이 아닐까요?

내 주위에 사람들 중에 그러한 길이 있다고 믿고 장래에 가야할 그곳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소망으로 알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누구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대상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기 위한 것으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요?

그들의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믿고 있는 소망이 나에게는 무시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나는 과연 필요가 없는

무시해도 괸찮는 것으로 여길만한 확실한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점에 대해서 확률 께임을 한다면 누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볼일입니다.

세상의 일에는 지고 실패하면 다시 할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으나 영혼이나 영원의 문제 즉 죽음 후에

다른 세계의 문제는 돌이킬수 없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회중시계의 뚜겅을 열고 안을 들여다 봅니다.

작은 기계 부품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주어진 일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존재하며 그 일들을 계속 할수 있을까요

밖에 있는 시계공이 그들을 그 장소에 박아두고 서로 연결하여 일을 하도록 태압을 감아 두었습니다.

어떤 부품이 말을 합니다.

“ 우리는 서로 연관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으니 누구의 간섭도 지시도 필요 없고 하니 우리는 이일을 계속해서 언제까지 할수 있습니다.”

라고 했을 때 밖에 있던 시계공이 이 말을 듣고 태압을 풀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일시에 정지되고 하나의 쇳덩이 부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은 회중시계 속에 움직이는 부품들과 같은 존재입니다.

밖에서 존재하고 계신 창조자 초월자가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시계공과같이 밖에서 우리를 주관하고 계시는 창조자가 없다고

 외치고 부인해도 그것과 상관 없이 우리의 탄생 이전부터 계셔왔던 그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기칠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한갖 증거를 댈수 없는 한계를 가진 한 인간의 외침일 뿐입니다.

시계의 부품들이 밖에 시계공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넌센스라면

우주의 법칙을 주관하시고 창조하신 초월자 하나님의 존재를 없다고 부인 한다면

그사람은 시계의 부품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벽에 걸린 그림 하나도 자기가 저절로 걸어와서 벽에 붙어 있습니까?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49편20절에 “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인생이라는 우리들은 시계속의 부품들과 같이 자기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형제님의 생명이 “나”아닌 다른 힘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고는 사실을 느껴지지는 않으신지요

5 단계 : Changing Stage.

나는 파리의 일생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알 – 애벌래 - 구데기 – 번데기 – 파리

이러한 모습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구데기 자신이 번데기라는 Changing Stage 라는 과정을 거쳐

하늘을 나르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파리로 변화되는 사실을 어찌 알겠습니까?

누가 구데기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네가 기어 다니는 보잘 것 없는 미물이지만 장래에 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나르는 파리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에 구데기는 믿을수 없노라고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구데기가 앞으로 파리로 변화되는 사실을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그 부인하는 것 때문에

파리가 되는 장래의 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구데기의 일생보다 긴 인생을 가진 우리가 볼 때에 구데기가 어느날 하늘을 나르는 파리가 된다는

사실을 진리로 그리고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죽으면 그만이지 세상밖에 하나님이 계시고 죽음이라는 Changing Stage 를 지나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영원이 사는 세계가 있다고 말했을 때에 어찌 믿을수 있느냐고

소리치며 부인한다고 해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 그리고 영원한 삶이 없어지겠습니까?

구데기의 삶을 우리가 보고 알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일생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부인 할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이 현실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구데기가 번데기라는 과정을 거쳐서 파리가 되는 현실을 믿으시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의 삶에도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삶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느껴지지 않으신지요

6 단계 : 나는 죄속에서 태어났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철학자 킬켈골은 “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다” 라고 했읍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 없어진다면 좋을 텐데 영혼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삶속에서 두려워 하는 것은 닥쳐올 미래에 불확실성 때문이다.

죽음후에 있어질 일도 미래의 일이기에 불확실합니다.

세상에서 두려움을 모르고 벳장으로 살았던 어떤 사람도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에는 짐승이 아닌 영혼이 있는 사람이기에 불안을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될 것인가, 예수를 믿는 크리스챤들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일까?

로마서 3장 23절에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은 이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 났다고 합니다.

죄인으로 태어 났기에 사람은 철이 들면서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죄의 결과는 세상에서는 불안이요 감옥행이요 결국은 죽음입니다. 누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수 있읍니까?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에 “ 죄의 삯은 사망이요 “ 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세요

아무도 죄 없다고 말 할 인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치 못한 영혼은 지옥행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님! 형제님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아니면 죄가 있음을 인정 하시는지요

만약 죄 있음을 인정 하신다면 어찌 이 죄 문제를 해결 하실런지요

7 단계 : 심판에 대한 처방

죄는 그 결과로 사망을 가져오고 사망후의 심판은 불가피 합니다.

혹자는 외칩니다.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요,

죽어 없어지면 그만 이라고요.

혹자의 외침은 살아 있을 때에 무지한 자기 고집에서 나온 주장 일뿐 죽는 순간에는 미래에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 때문에 그의 자신에게 불안이 엄습해 올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을 지켜본 의사들의 증언에서 명백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명망치 않고 영생을 주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구원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처방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처방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사랑의 하나님은 해결 할수 없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이 육신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형제님! 역사를 믿으십니까? 역사는 예수가 로마 법정에서 십자가 형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부인 할수 없는 역사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삼일후에 살아 나셨다는 사실도 그당시 살아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증언한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들판에 개미 때들이 움직이고 있읍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큰 트럭터가 닥아옵니다 .

잠시 후에는 개미들의 운명이 죽음으로 마감을 하게됩니다.

이때 지나가던 개가 이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아무리 부르짖어도 개미들은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은 개가 개미가 되어 개미들이 알아 들을수 있는 말로 위험을 알려야 합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위험을 알리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셔서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살길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제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영혼은 없습니다.

이제 문제는 간단해 졌읍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분을 믿지 않음으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죄의 속성은 절대로 그대로 자나치지도 않으며 덮어 둘수도 없으며 무서운 죄값을 요청합니다.

이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도 죄없는 사람이 없기에 형제님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형제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인정치 않는다면 죄를

씻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인정 하시는지요

세상에서 누가 형제님의 죄 문제를 해결 하겠습니까?

8 단계 : 자기 생명을 사랑하라

나는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형제님에게 단연코 외칩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 예수 믿고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이럴 때 혹자가 저에게 묻습니다. 세상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육신의 생명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 영원한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현실의 삶에 올인 하면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없는 이땅의 생명은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 버려진 생명입니다.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예수 없이는 지옥에 간다는 크리스챤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형제님은 어디에 서야 하는 것일까요?

당신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것을 심각한 문제로 고민하고 계산을 해봐야 하고 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야 할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에 “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케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중에 있느니라”

세상에 사람들은 높아진 자기의 이론에 붙잡혀 하나님의 이론을 대적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 이심을 거부하고 자기의 증명 될수 없는 사람의 이론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도자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저항하며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합니다.

(God is no where)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부인한 한마디의 말속에도 하나님은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다라고요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이 여기에 계심을 말씀으로 증명하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셨습니다.

짐승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하늘과 땅 전파 공기 DNA

이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만물을 보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 이심을

시인하고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중에 누가 바람에 굴러 다니는 나무 잎사귀 하나를 만들었다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단연코 없었고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에게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수 없었다는 핑계는 절대로 댈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중에 기필코 믿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만약 이것을 못 믿겠다면 바보로 정신나간 사람으로 그리고 억지 주장하는

사람으로 더 심한 말을 한다면 치매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이 있는데

그것은 형제님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입니다.

형제님은 그분을 보지 못했지마는 그 증조할아버지가 과거에 계셨던 사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이 세상에 없었다고 말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믿을수 없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방편으로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컴퓨터 인터넷 전송을 믿으십니까?

세계 어느 곳이나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편지나 사진들이 오고 가는 이 인터넷 세상은 믿으시겠지요

저는 이 인터넷 세상의 신비함을 보고 하늘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 하실수 있는 분으로

확증할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1절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주위에 미련한 전도자들이 당신에게 닥아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애원하는 그들의 열심 있는 마음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절실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사람이 이땅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말들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다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어 지십니까?

물론 안믿어 지시겠지요.

그러나 성경에 신명기 5장 28절에 “ 여호와께서 너희가 네게 말할 때에 너희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라고 하셨습니다.

인터넷 세계는 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해 줍니다.

형제님! 소리는 우주에 떠도는 전파요 파장인 것을 아시는지요

형제님이 말하는 말소리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진폭의 모양을 가진 전파이거든요 그렇기에 형제님의

말소리를 하나님은 그 소리가 형제님의 말소리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공중에 결코 없어지지 않고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사람이 돼지에게 인터넷의 신비함을 설명했을 때에 못알아 듣는 것은 무지함 때문이며 차원이 다르기 때문 이겠지요

여기까지 와서도 만약 형제님께서 하나님의 존재를 못알아 들으신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9 단계 : 중대한 질문

오늘 이시간 당신의 생을 마치는 순간이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정이지만 이런 순간은 사람이라면 한번은 가져야 할 운명입니다.

이제 지금까지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야 되고 부모 형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살

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어딘가에 가아만 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챤들은 이런 순간은 두려움이 없으며 세상을 살면서 그리던 천국으로 간다는

소망으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하며 자신을 믿고 살아왔던 형제님에게 묻습니다.

만약 저 크리스챤들이 확신을 가지고 믿는 천국과 지옥이 죽는 이순간 까지도 없다고 부인

하시렵니까?

혹시 이 순간 전도자들이 형제님에게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 이심을 믿어 달라고 애원했던

그 애원을 지금 이 순간에 다시 한다면 그들의 부탁을 들으시고 예수가나의 구세주 이심을 믿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니면 끝까지 형제님의 고집을 지키며 그대로 불확실한 곳으로 파멸로 이끄는 장소로

가시겠습니까?

지금 이 마지막 순간도 구세주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그래도 크리스챤이라고 자처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어떤 사람의 부도덕적인 행위를 보고

              그런사람이  믿고 있는 예수는 믿을 가치가 없다고 교회를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정처없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왔던 그대로 내가 지켜왔던 나의 의지 그대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 하시렵니까?

              그리고 죽음 이후의 문제는 그때 가서 판단해서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10 단계 : A 간증 이야기

1989년 11월 12일 새벽기도 시간에 김학훈이라는 형제님이 Pomerado Hospital에 간암

로 입원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병원을 찾았습니다 .

생면 부지의 모르는 형제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미국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마치고 사업에 성공하여 5에이카의 큰땅에 집을

짓고 풍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분의 삶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진찰 결과 간암 말기라

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 입원한지 석달이 되는때에 제가 그를 찾았습니다.

눈의 시력은 초점을 잃고 동공은 희미해 졌습니다. 그의 생명은 몇일 가지 못할 것이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 형제님! 우리 하나님은 형제님을 사랑 하시기에 저를 오늘 이곳에 부르셨습니다.

형제님의 육신은 지금 꺼져가지만 영혼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님은 그동안 세상을 사시면서 자신이 죄 없다고 생각치 않으시죠 그 죄는 우리를 끝내

는 지옥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천국에 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형제님이 천국에 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형제님은 예수가 구세주 이심을 믿으시고 입으로 시인하시고 천국에 가셔야만 됩니다.

저의 간절한 절규에 마음에 감동을 받으셨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제님! 저의 기도를 마음으로 따라해 주세요” 흐릿한 정신이지만 말라 붙은 입술로 저의

기도를 따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기도였습니다.

그 형제는 구원을 받았으리라 저는 확신했읍니다.

삼일후 천국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김학훈이라는 분은 마지막 순간에 왜 저의 간절한 전도에 눈물을 흘리며 받아 드렸다고 생각 하

십니까? 왜요? 그분의 육은 죽어 숨이 끊어져 가지마는 그분의 영혼의 생각은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엄청난 어두움의 두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자의 구원의 메시지는 그에게는 작은 하나의 불빛 이였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소망

이였을 것입니다.

B, 간증 이야기

저는 고등학교 3학년때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신 아버지를 업고 병원을 돌아 다녔지마는

받아 주는 병원은 없었읍니다.

어떤 사람이 춘천에 있는 성모병원에 가면 극빈 환자를 받아 준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모시고 춘천행 완행열차를 탔습니다.

짐과 사람으로 가득찬 완행 열차는 정거장마다 서며 계속 사람을 태우고 밤 늦게야

춘천에 도착하여 값싼 여관을 찾아 들어가 잠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길을 물어 성모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의사의 진찰 결과는 고칠수 없는 병이므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였습니다.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슬프고 절망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라면서 저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 아버지! 아버지에게 저의 소원이 한가지 있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 내가 다 죽어 가는데 너의 소원을 어떻게 들어 줄수 있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대답은 “ 아버지! 저의 소원은 내가 믿는 예수님을 아버지도 믿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천국 가시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의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 “그래 너희 소원이 그것이라면

내가 왜 너의 소원을 왜 못들어 주겠느냐” 하시면서 이어서 “네가 믿는 그 예수님을

나도 믿을 것이다.” 하시며 어떻게 해야 나도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갈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집에 돌아와서 교회 이영희 목사님을 모시고 예수복음에 대한 것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 되셨고 삼일 후에 운명하시기 직전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당신도 예수믿고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라는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후부터 저의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하셨으며 그후 52년간 크리스챤의 삶을 사시다가

99세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지금 쯤은 두분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서 땅위의 자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시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형제님! 이것은 저의 숨김없는 살아있는 간증 이야기였읍니다.

천국이라는 이 소망의 가치는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으며 나의 목숨을 주고서라도 사야만 하는

가치의 소중한 소망입니다.

 

C, 간증 이야기

어떤 병원에 DR, Park이라는 마지막 사망을 확인하는 의사의 이야기 입니다.

50명의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참으로 이상한 것을 발견 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보통 사람들의 임종에 차이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고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아볼 가치가 있다고

했읍니다.

보통 사람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지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두려움이 없는 평온함으로 자식들에게 마

막 인사까지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의 죽음은 누군가에 끌려가는 것에 대한 공포의

순간을 얼굴 표정에서 역력히 볼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직접 보면서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숨을 거두시는 장면을 보았

니다.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의 차이는 세상에서는 같은 사람의 삶을 살지 몰라도 죽음 후에는

엄청난 차이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형제님은 기필코 아셔야 합니다.

11 단계 :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

사랑하는 형제님! 인생이 태어 날때는 순서적으로 태어나지만 그러나 인생이

가는 날은 순서가 없읍니다.

이땅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인으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날 가야할 곳은 지

옥일 것입니다.

그때 가서 자신이 잘못된 길로 온 것을 알고 돌아 가려해도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읍니까?

당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땅에 살수 있는 한정된 시간을 주셨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땅에 태어날 때 우리의 의지로 태어 난 것이 아닌 것으로 능히 우리를

이땅에 살도록 하게 하시고 한정된 기간을 주셨음을 짐승의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면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모두 먹고 자고 자신을 즐기는데 사용해버리고 당신을 창조하시고

살수 있는 환경과 시간을 주신 분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 책임은 바로 그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시간을 주신 것은 주어진 시간에 전능자 하나님을 만나서

그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구세주 이심을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나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라는 말씀을 사람이라면

그대로 지나쳐 버려서는 나중에 큰 화가 자신에게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읍니까?

내가 어디에 서야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증거도 확증도 없는 나의 고집 나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전도자의 권유를 뿌리치고

갈때까지 가야만 하는지 깊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12 단계 : 구원에 초대

오늘 이시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말씀으로 형제님을 구원의 열차에 타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시간 이 구원의 열차를 타지 아니 하시고 또 미루신다면 아마도 다시는 구원의

열차와 관계가 없는 인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기회는 항상 형제님의 곁에서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요

손에 잡혀진 것이 아니고 눈앞에 보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왜 똑 같은 환경에서 똑 같은 말로 전도자가 말을 할 때 믿어져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일까요

눈에 보여지지 않은 것 손에 만져지지 않은 것을 믿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

하십니까?

너무나 엄청난 것을 값없이 전도자의 말 한마디로 얻어진다는 것이 의심스러워 믿을수

없는 것입니까?

에배소서 2장 8절에 “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마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랑하는 형제님 지금 전도자가 들고온 하나님의 선물이 형제님 앞에 와있습니다.

형제님의 손을 벌리고 마음을 열어 믿음으로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믿겠다는

마음으로 믿어 보세요 그리고 그 선물을 내것으로 받아 보세요

세상의 상식을 넘어 믿어 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큰 부자가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의 재산을 물려줄 사람을 찾던 중 거리를 지나다가

거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지에게 쪽지 한장을 주며 이 쪽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오면 100억의 돈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지는 그 쪽지를 받아들고 생각에 잠겼답니다. 생각해 보니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무리 거지라고 사람을 무시하고 이렇게 작난 짓을 할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몇월 몇일 몇시 그리고 적혀진 장소, 100억짜리 수표는 그냥 산산쪼각 찌져져 바람에 날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왜? 거지는 100억짜리 쪽지를 엄청난 돈으로 볼수 없었을까요.

상식의 수준을 넘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라는 엄청난 쪽지를 보잘 것 없는 전도자가 소개하고 말을 했기 때문에 믿을수 없

는 것인지요.

거지가 엄청난 부자가 되는 길을 넘어서지 못한 것처럼 형제님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로마서 10장9절-10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를 주로 시인하며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계시록 3장 20절 “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형제님의 마음의 문은 누구도 밖에서 열수가 없읍니다.

오직 형제님 자신이 안에서 여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지금까지 형제님의 쌓아온 지식에 형제님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마끼지

마세요 .

지금까지 형제님의 속에서 형제님을 조정해 왔던 형제님의 마음 그리고 인격을 전폭적으로

믿지 마세요

형제님께서 죽음의 문턱에 서서 마지막 순간에 서서 갈바를 모르고 섰을 때에 그리고 천국

과 지옥의 갈림길에 섰을 때에는 그것들은 형제님을 외면하고 떠나 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오늘 이시간 하나님께서는 형제님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형제님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주저하세요 형제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님께 마껴 보세요

형제님이 지금까지 앞세웠던 체면이나 인격이나 그 어떤 것도 형제님을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이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영원한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신다면 손을 들어 표시해

세요 그리고 전도자의 기도를 따라해 주세요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는 지금까지 생명의 주님을 알지 못하고 내 뜻데로

나를 위하여 인생을 살아 왔으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죽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물결 치는데로 세상의 바람이 부는데로 살아 왔습니다.

이제 전도자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제가 죄인임을 깨달았고 나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사실을 믿게 되었읍니다.

이제 주님은 저의 구세주가 되시고 저는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다.

주님! 저를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시니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형제님! 이제 형제님은 주님을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 하셨으니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구원자 주님께서는 형제님의 이름을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 하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형제님이

천국에 오시는 날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아 주실 것입니다.

지난날의 살아 오셨던 삶은 지난날 이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크리스챤의 삶을 살기위해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셔서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구주인 것을 믿어 영생의 삶을

사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자 : 정사드락 목사 kvmchurch@hotmail.com San Diego 골방에서 Tel, (858)997-8949imagesCA63AXZ0.jpg 하나님 나라 구원에 초대 www.chungmoksa.com